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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야기] 제18회 언더우드 선교상을 수상한 이상훈(정외 86입) 선교사
등록일: 2018-12-05  |  조회수: 271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

아프리카에서 24년 간 헌신적으로 난민 구호활동 및 선교에 힘쓰다

 

10월 12일 열린 제18회 언더우드 선교상 시상식에서 이상훈(정외 86입) 선교사가 선교상을 수상했다. 이상훈 선교사는 1994년부터 르완다를 비롯한 아프리카 곳곳에서 선교 및 구호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4년 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는 이상훈 선교사를 만나 선교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걷게 된 선교의 길

대구 출신으로 모교에 입학해 서울에 상경했지만 대학생활은 꿈꿔오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86학번으로 고 이한열과 동기인 그는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얼마 전에 영화 을 봤는데 눈물이 나서 두 번은 못 보겠더군요. 학창시절 기말고사를 정상적으로 쳐 본 것은 2학년 2학기 때부터였습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민주화를 위해 많이 고민하고, 아프고 슬픈 경험을 겪어야 했습니다. 군대 제대 후 방황하던 중 성경을 읽다가 크리스찬이 되었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선교사의 길은 쉽지 않다. 넉넉한 보수를 받지도 못하고, 좋지 않은 도로사정과 미비한 차량정비로 인한 교통사고도 흔하다. 또, 말라리아나 간염 등 질병도 흔하게 걸리게 된다. “단체에서 선교를 나올 때 20명 정도가 나왔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저를 포함해 2명입니다. 대부분은 사고나 질병, 동료나 파송교회와의 갈등, 자녀 교육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나게 됩니다. 저 역시 교통사고로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고, 간염에 걸려 귀국했던 적도 있습니다. 중도 귀국하게 되는 것이 불명예스럽다는 것도 아니고 오래 남아있는 선교사가 반드시 좋은 선교사라는 것도 아니지만 오랜 시간 버텨낸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일임이 분명합니다.” 이상훈 선교사는 ‘언더우드 선교상’을 수상했지만 본인보다 훌륭한 선교사 분들이 더 많다고 한다. “저는 20여 년이 넘게 개인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교회에서도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선교상을 수상했지만 이러한 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본인의 자리에서 묵묵히 사역하고 계시는 훌륭한 선교사 분들이 더 많습니다.”

참담한 현실의 난민들을 위해 다방면의 구호개발 활동이 필요

1994년 28살의 이상훈 선교사는 국제기아대책기구 간사로 일하다가 민간 차원의 구호 활동을 위해 아프리카 르완다에 파견됐다. 계속된 내전 상황이던 르완다에 도착한 이상훈 선교사에게 당시 상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는 전쟁과 질병으로 인해 곳곳에서 시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건물 벽에는 총탄 자국이 선명했고,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실성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여성들이나 아이들의 상황 역시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습니다.” 당시 르완다인 대부분 불어를 사용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상훈 선교사를 비롯한 다른 봉사자들은 전후 지역 복구와 난민 구호활동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난민들이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의료 및 식량보급, 전후 지역 복구 등 구호활동에 매진했다. 3년의 사역을 마치고 간염으로 귀국 후 미국에서 잠시 개발학 관련 공부를 하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국제기아대책기구 소속으로 우간다에서 구호 개발활동을 진행했다. “구호활동 파견 시 선발대로 먼저 가서 준비를 합니다. 그 후 동료들이 도착하고 보통 2주 후에 본대가 도착하게 됩니다. 구호활동을 하더라도 협의 후 구역이나 활동분야를 할당해서 부족한 부분을 배치합니다. 의료, 수자원, 식량, 의복이나 주거 관련된 천막, 아동문제, 교육, 여성문제 등 광범위하게 분야별로 일하는 단체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단순히 의식주에 관련된 구호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레크레이션을 담당하는 단체도 생기고, 청소년 지도, 훈련 등을 도와주는 단체도 있습니다.” 난민 구호활동은 분명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역효과도 존재한다고 한다. “초기에는 UN에서 식량 등을 제공합니다. 안정이 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다시 터전을 일궈야 하는데 장기화 되면 난민촌이 마을처럼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케냐에 있는 Kaguma 난민촌은 1969년에 생긴 것인데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장기적으로 난민생활을 하게 되는 사람들은 의지를 잃고 난민 생활을 선호하게 되는 역효과도 있습니다.” 구호활동은 초기 대응이 중요하지만 이런 역효과가 생기지 않도록 개발하는 활동도 중요하다.

소명을 따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선교

난민 구호활동 중 자원봉사자인 지금의 아내 이송희 선교사를 만났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난 두 딸과 막내아들까지 모두 아프리카에서 자랐다. 변변치 않은 교육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두 딸이 대학에 입학할 무렵 등록금을 대줄 수가 없어서 대학에 합격하고도 장학금을 받지 못해 재수를 해야 했다. “가장 아쉬운 건 아이들 교육문제였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자폐를 가지고 있는 막내아들을 위한 시설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 재수할 때 이번에도 장학금을 신청해야 하냐고 묻는 딸에게 등록금을 대줄 수가 없다고 말하곤 방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막내 동생을 돌보며 자란 두 딸은 장학금을 받고 싱가폴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인권변호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 첫째 딸은 현재 한국 로펌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고, 과외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는 둘째 딸은 특수학교 교사를 준비하고 있다. “어려웠던 일들이 나중에 오히려 축복이 되고 애들을 성장시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지금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이 훨씬 살기에 좋겠지만 아프리카 아이들은 예를 들면, 과외나 미세먼지나 황사 걱정없이 방과 후에 자유롭게 뛰어노는 등 나름대로 그들만의 즐거움과 행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3년의 구호활동 후 한국에 잠시 돌아왔을때 이상훈 선교사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신학교에 가라는 얘기였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나 필요에 맞게 자기 각 분야에서 그 나라 사람을 위해 여러 방법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선교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연세를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의 이념에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신학대학을 세우지 않고 일반대학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당시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하신 일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정말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훈 선교사는 선교와 아닌 것을 엄격히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관자인 하나님이 직접 선교를 하시고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동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굳이 선교라고 불리지 않아도 자신의 일에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분들이 모두 선교사라고 생각합니다.”

연세의 정신이 아프리카에서도 이루어지길

2010년에 다시 르완다로 돌아간 이상훈 선교사는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다. 식수·종자·농기구 지원, 바이오디젤연구, 나무심기 등 주민 소득증대를 위한 난민구호 활동을 집중적으로 하는 로컬 NGO 활동을 했었고, 이제는 1천2백여 명의 학생이 있는 개신교연합대학에서 정치학 과목과 개발학과 관련 실무 등을 강의하는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면서 또한 2015년부터 병원과 학교를 세우기 위해 설립된 법인의 director로 일하는 등 투잡을 하고 있다. “직업은 여러 개지만 그 모든 것이 선교활동의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르완다는 예전에 생활하던 곳을 찾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복구되어 빌딩이 서있을 정도로 잘 개발되었습니다. 다만 현재 정부가 정권강화와 장기집권을 위해 교회를 탄압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카톨릭과 개신교를 합치면 인구의 80%정도인데 공중시설 미비, 화장실, 주차장, 목회자 훈련부족 등의 이유로 8천여 개의 교회가 문을 닫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선교활동에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훈 선교사는 현재 르완다에 병원을 건축하고 있다. 15억 원을 들여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지만 추가공사가 늘어나며 3억 원 정도가 더 필요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후원해주신 덕에 이미 2억3천만 원이 모금되었습니다. 병원과 숙소가 완공되면 몇 년 정도 후에는 후원에 의지하지 않고 자력으로 활동이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학교도 지을 예정입니다.” 아직 먼 이야기지만 그는 르완다에 연세와 같은 대학이 생겼으면 한다고 말한다. “모교 연세를 롤모델로 한 대학을 짓고 싶습니다. 훗날 학생들에게 연세가 이 학교의 롤모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항상 자랑스러운 연세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연세인들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연세의 ‘진리와 자유’의 정신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는 이상훈 선교사의 바람대로 르완다에도 그 옛날 언더우드의 정신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백진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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